이상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나온 건 1956년입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이죠. 그런데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이 AI를 처음 직접 만져 본 건 아마 2022년 겨울일 겁니다. 이름이 붙고 66년이 지나서야 우리 손에 들어온 셈입니다. 그동안 이 기술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요.
답을 미리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생각은 일찍 나왔는데, 그 생각을 실제로 돌려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갖춰지는 데 반세기가 넘게 걸렸고요. 언제 무엇이 도착했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요즘 쏟아지는 뉴스가 큰일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 죽었던 학문
1950년,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논문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6년 뒤 미국 다트머스 대학에 모인 연구자들이 이 물음에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꽤 낙관적이었습니다. 몇십 년이면 사람만큼 하는 기계가 나올 거라고 봤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 낙관은 두 번 크게 무너집니다. 이 바닥에서는 그 시기를 AI 겨울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는 1970년대였습니다. 사람 뇌의 신경세포를 아주 단순하게 흉내 낸 방식이 한창 유행했는데, 이 방식으로는 간단한 문제조차 풀 수 없다는 게 수학적으로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연구비가 한꺼번에 끊겼습니다.
두 번째는 1980년대 말입니다. 이번엔 방향을 아예 바꿨습니다. 전문가한테 물어서 그 지식을 규칙으로 받아 적자는 거였죠. 의사에게 물어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 감기를 의심한다» 같은 규칙을 수천 개 쌓는 식입니다. 처음엔 제법 굴러갔습니다. 그런데 규칙이 수만 개로 불어나니까 서로 부딪히기 시작하더군요. «A면 B다»와 «A인데 C면 B가 아니다»가 뒤엉키고, 나중엔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덩어리가 됐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무너졌습니다.
두 번의 실패에는 같은 뿌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아는 걸 사람이 직접 적어 넣어야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번 해 보세요. 자전거 타는 법을 글로 적어서 남에게 가르쳐 보는 겁니다. 몸을 어느 쪽으로 몇 도쯤 기울이라고 써야 할까요. 페달은 언제 밟으라고 해야 하죠. 우리는 분명 자전거를 탈 줄 압니다. 그런데 어떻게 타는지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아는 것과 적을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에요. 이 벽이 AI를 30년 넘게 가둬 놨습니다.
더 얄궂은 건, 이 벽을 넘을 아이디어가 이미 1980년대에 나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규칙을 적어 주지 말고 예시를 잔뜩 보여준 다음 기계가 알아서 찾게 하자는 거였죠. 지금 우리가 쓰는 AI가 전부 이 방식입니다. 방향은 처음부터 맞았던 겁니다. 다만 그걸 돌려 볼 방법이 그때는 세상에 없었습니다.
엉뚱한 데서 온 세 가지
«알아서 찾게 하자»가 실제로 돌아가려면 세 가지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셋이 참 재미있습니다. 하나도 AI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이유로, 우연히 하나씩 도착했습니다.
첫째는 사진과 글, 그러니까 보여줄 예시입니다. 기계가 고양이를 알아보려면 고양이 사진이 수십만 장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1990년대까지는 그만한 사진을 모을 방법 자체가 없었어요. 필름 사진을 어떻게 수십만 장 모으겠습니까. 그러다 인터넷이 퍼지고 사람들이 저마다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채 세계 최대의 사진 창고가 만들어졌습니다.
둘째는 계산할 힘입니다. 사진 수십만 장을 수백 번 반복해서 보는 계산은 당시 컴퓨터로 몇 년이 걸릴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뜻밖의 구원투수가 나타나는데, 다름 아닌 게임용 그래픽카드입니다. 화면에 수많은 점을 한꺼번에 그리려고 만든 부품인데, 그 구조가 공교롭게도 AI가 하는 계산과 성격이 똑 같았습니다. 게이머 지갑을 노리고 만든 물건이 AI의 엔진이 된 겁니다.
셋째는 가르치는 방법입니다. 기계 안에 판단하는 층을 여러 겹 쌓을수록 똑똑해진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여러 겹을 한꺼번에 가르치는 방법을 몰랐다는 거예요. AI 겨울에도 이 문제를 붙들고 있던 소수의 연구자들이 2000년대에 걸쳐 하나씩 풀어냈습니다. 훗날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이 그중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2012년, 이 셋이 동시에 갖춰집니다. 그해 열린 이미지 인식 대회에서 층을 깊게 쌓은 방식 — 지금 우리가 딥러닝이라 부르는 것 — 이 기존 방식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이겼습니다. 이날 이후 AI 연구는 사실상 한 방향으로 재편됩니다. 56년이 걸린 이유는 아이디어가 늦어서가 아니라, 예시와 계산기와 방법이 모이는 데 그만큼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도 써먹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AI가 나왔다»는 소식을 보시거든 이렇게 물어보세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건가, 아니면 예시를 더 많이 넣은 건가, 그것도 아니면 그냥 계산을 더 돌린 건가. 대부분은 뒤의 둘입니다. 그리고 그건 값이 떨어지면 남들도 곧 따라 한다는 뜻이에요. 실제로 지난 몇 년간 그런 일이 반복됐습니다.
2016년 3월, 서울
2012년의 사건은 어디까지나 연구실 안의 일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거 진짜구나»를 몸으로 느낀 날은 따로 있어요. 그것도 하필 서울에서 일어났습니다.
구글 딥마인드가 만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다섯 판을 뒀습니다. 체스는 이미 1997년에 IBM의 딥블루가 세계 챔피언을 이겼는데, 바둑은 왜 20년이나 더 걸렸을까요. 체스판이 64칸인 데 비해 바둑판은 돌을 놓을 자리가 361곳입니다. 거기서 갈라지는 경우의 수는 «우주에 있는 원자 수보다 많다»고 표현될 정도예요. 딥블루처럼 가능한 수를 하나하나 계산해 내려가는 방식으로는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바둑은 사람의 «감»이 지배하는 마지막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알파고는 그 «감»을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규칙을 받아 적은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양의 기보를 보고 «좋아 보이는 수»를 스스로 익힌 거죠. 모든 수를 계산하는 대신 좋아 보이는 몇 갈래만 골라서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사람이 «감»이라 부르던 걸 기계가 흉내 낸 셈입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기계가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걸린다고 봤습니다. 그 예상이 이 다섯 판에서 깨졌습니다.
결과는 알파고의 4대 1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은 오히려 이세돌이 이긴 4국이에요. 78번째 수를 상대 진영 한가운데에 툭 끼워 넣자 알파고가 그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수를 «신의 한 수»라고 불렀죠. 그리고 이 판은 사람이 최고 수준의 바둑 AI를 공식 대국에서 이긴 사실상 마지막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이듬해 개선된 알파고가 당시 세계 1위 커제를 3대 0으로 꺾은 뒤, 딥마인드는 바둑에서 손을 뗐습니다. 더 겨룰 이유가 없어졌으니까요.
이 대국이 한국에서 유난히 큰 사건이었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선수가, 우리 땅에서 졌거든요. 그 뒤로 정부와 기업 양쪽에서 «AI를 해야 한다»는 말이 쏟아졌고, 네이버가 2021년에 대규모 한국어 AI인 하이퍼클로바를 내놓는 등 국산 개발이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성능 경쟁의 앞자리는 미국 회사들이 잡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어 회의록이나 국내 법령 문서처럼 한국어에 깊이 붙은 일에서는 국산이 나은 자리가 분명히 있어요. 도구를 고를 때 «세계 1등»만 볼 이유는 없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안 읽은 논문 한 편
그런데 알파고는 바둑만 뒀습니다. 글을 쓰거나 말을 알아듣진 못했어요. 지금처럼 말로 이것저것 시키는 AI가 되려면 부품이 하나 더 필요했는데, 그게 이듬해에 아무 소란 없이 조용히 나옵니다.
2017년 6월, 구글 연구진이 논문 한 편을 내놓습니다. 제목부터 좀 도발적이었어요. «Attention Is All You Need», 우리말로 옮기면 «주의만 있으면 된다»입니다. 여기서 제안된 구조 이름이 트랜스포머입니다. 당시 일반 뉴스에는 거의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오늘의 AI를 만든 건 알파고가 아니라 이 논문이에요.
그전까지 언어를 다루는 AI는 문장을 앞에서부터 한 단어씩 읽었습니다.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는 셈이라, 문장이 길어지면 앞을 까먹었어요. 트랜스포머는 읽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문장 전체를 한 번에 펼쳐 놓고, 어느 단어가 어느 단어와 관련 있는지를 한꺼번에 따집니다. «그 의사는 환자를 봤다. 그는 친절했다»에서 «그»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문장 전체를 훑어서 단번에 짚는 식이죠.
이 방식의 진짜 위력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되니까 일을 잘게 쪼개서 컴퓨터 수천 대에 나눠 돌릴 수 있게 된 겁니다. 쉽게 말해 모델을 마음껏 키울 수 있게 됐어요. 앞에서 말한 세 가지 중 «계산할 힘»을 쏟아부을 길이 활짝 열린 셈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ChatGPT도, 클로드도, 제미나이도 이름만 다를 뿐 바닥은 전부 이 구조입니다.
이후 몇 년은 이 구조 위에서 크기를 키우는 경쟁이었습니다. 2020년에 나온 GPT-3에 이르러서야 글 쓰는 AI가 처음으로 «이거 쓸 만한데»라는 평을 듣습니다. 다만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개발자들의 물건이었어요. 보통 사람이 만져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2022년, 벽이 무너지다
그 벽이 무너진 해가 2022년입니다. 순서가 재미있는데, 글보다 그림이 먼저 왔습니다.
그해 여름, «우주복 입은 고양이를 유화로 그려 줘»라고 적으면 몇 초 만에 그림이 튀어나오는 서비스들이 한꺼번에 쏟아졌습니다. 그림은 사람만 그리는 거라고 다들 믿고 있었으니 충격이 컸죠. 그리고 동시에 저작권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AI가 배운 그림들의 원작자는 아무도 동의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이 논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림 AI로 만든 걸 팔거나 광고에 쓰실 생각이라면, 그 서비스 약관을 꼭 한 번 읽어 보셔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11월 30일, OpenAI가 ChatGPT를 내놓습니다. 기술적으로 보면 2년 전에 나온 GPT-3를 대화하기 편하게 다듬은 것에 가까웠어요. 새로웠던 건 기술이 아니라 문턱이었습니다. 그전까지 AI를 쓰려면 개발자여야 했는데, 이제는 주소창에 들어가서 말을 걸면 끝이었거든요. 사용자 1억 명에 도달하는 데 두 달쯤 걸렸다는 조사기관 추정치가 나왔습니다. 틱톡이 아홉 달, 인스타그램이 두 해 반 걸린 자리입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AI»라는 말의 뜻 자체가 바뀝니다. 연구실 이야기에서 오늘 내가 쓰는 도구가 됐어요. 그러자 낯선 말들이 뉴스에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관계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큰 상자 안에 작은 상자가 들어 있는 모양이거든요.
| 말 | 뜻 |
|---|---|
| 인공지능 | 사람이 하던 판단을 기계가 하는 것 전부 — 제일 큰 상자 |
| 머신러닝 | 규칙을 적어 주는 대신 예시를 보고 스스로 찾게 하는 방식 |
| 딥러닝 | 머신러닝 중에서도 층을 여러 겹 쌓는 방식. 2012년의 주인공 |
| 생성형 AI | 딥러닝으로 글·그림·소리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 요즘 화제 |
그러니 뉴스에서 어떤 말을 쓰든 대개 같은 걸 가리키고 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말 정리는 여기까지 하고, ChatGPT가 열어젖힌 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부터 경쟁이 시작되거든요.
세 회사, 그리고 네 번째 갈래
ChatGPT가 터지는 걸 본 회사들이 잇달아 제품을 내놓으면서 2023년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구도가 만들어집니다. 2015년에 세워진 OpenAI의 ChatGPT, 2021년에 OpenAI를 나온 사람들이 세운 앤트로픽의 클로드, 그리고 딥마인드를 품고 있는 구글의 제미나이. 세 회사가 서로를 쫓는 모양새죠.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알파고도 구글이 만들었고 트랜스포머도 구글에서 나왔는데, 왜 ChatGPT를 구글이 먼저 내놓지 못했을까요. 확인된 사실은 이렇습니다. 트랜스포머 논문을 쓴 저자 여덟 명이 전원 구글을 떠났고, 대부분 자기 회사를 차렸습니다. 딥러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도 2023년에 구글을 나오면서, AI의 위험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기 위해서라고 공개적으로 밝혔고요.
흔히 따라붙는 해석은 «큰 회사라서 조심스러웠다»입니다. 검색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가진 구글은 엉뚱한 답을 하는 AI를 내놨다가 잃을 게 많았고, OpenAI는 잃을 게 적었다는 거죠. 그럴듯합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밖에서 보는 해석이고, 회사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확인된 사실과 그럴듯한 해석은 구분해서 기억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같은 2023년, 이 세 회사 바깥에서 네 번째 갈래가 열립니다. 메타가 «라마»라는 모델을 통째로 공개해 버린 겁니다. 세 회사 제품은 그 회사 서버에 물어봐야 답이 오는데, 이건 파일을 내려받아서 내 컴퓨터에서 직접 돌립니다. 쓸 때마다 내는 돈이 없고, 무엇보다 자료가 밖으로 나가지 않아요. 회사 문서를 다룰 때 이 차이는 결정적입니다. 대신 직접 준비하고 관리해야 하고 성능도 대개 최상위보다 한 발 뒤인데, 그 거리가 해마다 좁혀지고 있습니다.
답하는 AI에서 일하는 AI로
이렇게 판이 짜인 채로, 경쟁의 방향이 최근 2년 사이 다시 한번 꺾입니다. 두 마디로 줄이면 «생각하고 답한다», 그리고 «알아서 일한다»입니다.
앞의 것을 추론 모델이라고 부릅니다. 예전 AI는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답을 뱉었어요. 추론 모델은 답하기 전에 속으로 단계를 밟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종이에 적어 가며 푸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만큼 어려운 문제를 잘 풀고, 그만큼 시간과 값이 더 듭니다. 그러니 쉬운 일에 쓰면 값만 태우는 셈이에요.
뒤의 것이 에이전트입니다. 물어보고 답을 받는 게 아니라 시켜 놓고 결과를 받는 방식이에요. 자료를 찾고, 정리하고, 파일을 만들고, 다른 프로그램을 부르는 것까지 알아서 이어서 합니다. 쓰는 사람 입장에서 이 차이는 꽤 큽니다. 예전에는 질문을 잘 만들어야 했고 받은 답을 내가 옮겨서 정리해야 했다면, 지금은 «이거 해 줘» 한마디로 시작하니까요. 다만 대가도 분명합니다. 중간 단계를 알아서 밟는 만큼, 틀렸을 때 어디서 틀렸는지 찾기가 어렵습니다.
2026년 들어 큰 회사들의 발표는 «더 똑똑한 모델»에서 «얼마나 일을 맡길 수 있느냐»로 무게가 옮겨갔습니다. 70년 전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로 시작한 물음이, 이제 «기계에게 무엇을 맡길 것인가»로 바뀐 셈이죠.
그래서 앞으로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도 모릅니다. 이 글에 나온 예측들의 성적표를 한번 보세요. 다트머스에 모인 사람들의 낙관은 두 번의 겨울로 끝났고, «바둑은 10년 더 걸린다»던 예상은 그 전에 깨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양쪽 방향 모두로 틀려 왔어요.
그래서 예측 대신, 뉴스를 볼 때 확인하면 좋을 것 세 가지를 남기려 합니다. 첫째, 영상으로만 보여주는 건지 아니면 오늘 내가 눌러 볼 수 있는 건지. «곧 공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닙니다. 앞서 본 두 번의 AI 겨울이 정확히 이 «곧»에서 왔거든요. 둘째, 값이 얼마나 내려갔는지. 역사를 보면 대중화는 새로운 발명보다 값이 싸질 때 왔습니다. 그래픽카드가 그랬고 ChatGPT의 공짜 문턱이 그랬죠. 셋째, 누가 실제로 쓰고 있는지. «가능하다»와 «업무에 쓰고 있다» 사이는 생각보다 멉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덧붙이겠습니다. 지금의 AI는 사람이 규칙을 적어 준 게 아니라 예시를 보고 스스로 찾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만든 사람조차 왜 그렇게 답했는지 온전히 설명하지 못해요. 이 사실은 성능 이야기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으니까요.
70년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게 됩니다. 사람이 가르치려 했을 때는 두 번 실패했고, 스스로 배우게 했을 때 비로소 됐다. 그 대가로 우리는 «왜 그렇게 답하는지 모르는 도구»를 손에 넣었습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아마 그 대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관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